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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미의 생생하게 살아있기] 좌절의 힘

지난 글에서 적절한 좌절이 인간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필수적인 기능이라고 말러의 대상관계 이론을 따라 설명했다. 에릭슨의 발달과정을 따르자면 이것은 구강기의 발달과제와 관련이 깊다. 이 단계에서는 의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엄마를 통해 기본적 신뢰를 발달시키는데 이 일이 충족되지 못할 때 세상을 불신하는 쪽으로 인격이 형성된다고 본다. 사실 인간에게 의존 욕구만큼 뿌리 깊은 욕구가 있겠는가? 더구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온전히 엄마에게 달려 있는 영아기에 엄마는 절대적인 의존 대상이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의 근본적인 자아가 형성된다.

그러나 어떤 부모라도 자녀의 의존 욕구를 현실적으로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다. 엄마 역시 불완전한 누군가의 딸로 양육된 존재이기에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으며, 양육하는 시기에 몸이 허약해서 혹은 경제적인 문제 등의 상황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든 좌절은 아기가 견딜 수 있는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완전히 충족시키려는 것 또한 좋은 것은 아니다. 엄마가 젖을 제 때 안줄 때 배고픔을 통해 배고픈 ‘나’를 느끼고, 엄마의 품에 안기며 보호 받는 ‘나’를 느낀다.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 자체는 얼마나 큰 박탈의 경험인가! 그것은 차라리 외상적인 경험에 가깝다. 그러나 그 이후의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겨 익숙한 심장 소리를 듣는 경험은 또한 얼마나 안심이되는 경험이겠는가! 그 이후에도 아이는 지속적으로 만족과 좌절을 반복해 가면서 성장하고 자아를 형성해 간다.

 

만약 그것들이 아이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적절한 좌절이라면 그것은 건강한 성장을 돕는 자원이 될 것이다. 즉, 자신과 외부 세계를 구별하는 현실 검증력을 키우면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그들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 세상이 결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며, 자신이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만족을 얻을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대상을 내면화함으로써 떨어져 있을 때에라도 엄마의 존재를 인식하며 신뢰관계를 확고히 하는 연습도 적절한 좌절을 통해 하게 된다. 그러나 적절한 돌봄과 좌절의 결핍은 병적인 의존욕구를 갖게 만든다. 이것은 중독, 외도 혹은 신경증적 불안이나 분열등의 정신증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의 삶에서 고통이나 좌절이 지니는 의미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한 것 정도가 아니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성장의 조건이 된다. 상담을 하다보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좌절을 돌아보며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나, 자녀를 양육할 때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을 만난다. 그들의 안타까움에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문제가 인식되면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오히려 시각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의존 욕구의 좌절은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고 의존적 존재임을 깨닫고 주변에 의존할 어떤 대상이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채워지지 않았던 의존 욕구는 오히려 초월적 존재를 인식하고 영적인 성숙을 이루는 초석이 되기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에게 채워지지 않는 의존 욕구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무분별하게 아무 대상에게서나 그 욕구의 만족을 채움 받으려는 태도다.

 

상담 과정에서 항상 고려해야 하는 욕구의 충족과 박탈 문제, 특히 치료적 거리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에 견주어 실생활에서 자신 혹은 자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 감독 교수한테 거듭해서 지적을 받은 것은 내가 내담자들의 의존 욕구를 불필요하게 팽창시킨다는 것이었다. 상담자가 헌신과 책임 사이의 균형을 잃게 되면 내담자는 환상적 기대를 품게되고 결국은 그것이 심각한 좌절로 바뀌게 되는 위험성이 있음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내담자들은 삶이 힘들어서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 온다. 그런 내담자들이 상담자의 지지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상담자는 그 일에 있어 균형을 잘 잡아야 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즉, 치료적 거리를 잘 유지해야 상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상담자와 내담자 두 사람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관계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기 마련인데 상담에서는 이게 너무 가까와도 너무 멀어도 문제를 직시하며 통찰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가족 관계처럼 너무 가까울 때는 서로 지지하고 위로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내담자가 오히려 유아기적 환상 수준의 의존적 관계로 퇴행하게 만들어 객관적 통찰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상담이 방향을 잃게 된다. 반대로 계속 중립적 태도를 고수하면서 내담자의 심리적 모순들을 직면시키면 치료적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서 자신의 갈등이나 좌절을 억압하고 저항하게 만들어 상담 관계가 깨지기 쉽다. 그래서 상담자는 늘 이 치료적 거리를 염두에 두고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통찰하도록 이끌 수 있어야한다.

 

이런 치료적 거리를 일상의 관계에서 특히 자녀와의 관계에서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아기를 벗어난 자녀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욕구의 충족과 박탈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이 치료적 거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상담 초기에 상담가는 효과적 상담을 위해 내담자를 평가한다. 통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어떤 방어기제를 쓰는지 등의 평가를 통해 상담의 형태를 결정하고 치료적 거리의 균형을 잡기 위함이다. 지지상담은 내담자의 불안을 감소시키고 방어기제를 사용하도록 지지하면서 내담자의 퇴행과 미숙함까지도 인정하고 의존욕구를 만족시켜 주지만, 통찰상담은 지지대신 의존욕구를 박탈하는 기법을 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지를 받고 편안해지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않고 안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무분별한 지지는 객관적 시각을 잃게 하고 유아기적 의존욕구를 증폭시킨다. 그러므로 통찰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미성숙한 욕구를 잘 바라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지를 하며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이 과정은 자신의 문제를 찾아 인정하고 성숙해 가려는 건강한 자아와 그것을 저항하고 회피하는 병적 자아 사이의 치열한 전투이다. 이 때 경험하는 불안과 저항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상담가의 역할이다. 내담자의 의존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키면서도 안주하려는 욕구를 적절하게 좌절시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어린 시절이나 현재의 고통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내담자가 스스로 싸울 힘이 있음을 알려주고 지지하며 적절한 좌절까지 허락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성숙으로 이끄는 일을 위해 내담자의 건강한 자아와 상담자가 치료 동맹을 맺고 협력하는 것이 상담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좌절의 연속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은 각자 처한 성장의 단계에 따라 치열한 내적 전투를 치르고 있다. 좌절의 경험으로 인한 수치심이나 우울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의 자녀들을 힘들게 할 때 부모 된 우리가 상담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위의 치료적 거리나 치료 동맹을 기억하면서 자녀의 감정이나 처한 상황을 직면하고 고통에 대한 내성을 키우도록 돕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마음 가짐과 더불어 학령기의 자녀를 둔 부모가 실천해 볼 수 있는 팁을 소개하겠다. 첫째, 아이의 성장과 발달 단계를 고려해 중간 난이도의 놀이나 학습을 시키면서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가며 스스로 몰입하고 과제를 즐기도록 돕는다. 즉, 게임을 할때에도 매번 져주거나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절한 좌절과 만족을 함께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 좋다. 둘째,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했느냐, 아니면 누군가 시켜서 하게 되었느냐에 따라 실패 경험이 건설적일 수도 반대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부모가 통제적으로 양육할 때보다 자율성을 지지하는 행동을 많이 보이고 자녀와 신뢰관계가 돈독할 때 고통에 대한 내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아동 정신 분석가 프랑수아즈 돌토의 말로 글을 맺겠다. ’자녀를 키우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영역 안에서 가능한 일찍 자율을 허락하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러한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자립심을 키우고 매일매일 자신만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또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다. 소중한 자녀일수록 시련을 허용하고, 하기 싫어하는 일도 반드시 하게 하라.’

-GMK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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