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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미의 심리] 그림책이 나에게 묻다. 고래가 보고 싶니?

 

코로나 팬데믹, 그 터널을 지나면서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일상의 삶을 살아내도록 내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린이 집에서 돌아온 손주와 함께 지내는 두시간여의 시간이다. 물론 내 또래의 할머니들이라면 모두 동의하겠지만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함께 노는 일은 (써 놓고 보니 이상한 말의 조합이긴 하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것이 맞다. 아직 ㅌ발음이 서툴러 자신을 ‘애오’라고 부르는 아이가  “하부지, 애오 왔어요”하며 기분 좋아지는 인사말과 함께 현관문을 들어설 때의 기쁨이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두시간 정도 지나면 아이의 짐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나의 노쇠한 체력을 탓하곤 한다. 그러나 베트남의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 진한 고수향이 풍기는 쌀국수 그리고 보고 싶은 얼굴들을 향한 그리움을 참아내며,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내뿜는 암울한 기운과 서울의 시리고 건조한 공기를 걷어내며 문득문득 생명의 경이로움과 그로인한 기쁨으로  행복함에 젖게 만드는 것은 손주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이제 말을 배우느라 연신 조잘대고 할머니의 말을 따라하는 아이를 끼고 앉아 나도 아이가 내게 귀기울이는 만큼이나 암호같은 아이의 말을 경청한다. 그렇게 서로의 말투를 배워가며 노는 시간과 더불어 요즘 시작된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은 나의 초보 엄마시절의 옛 기억을 소환하며 40년 전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우와”라는 감탄사를 달고 사는 아이가 좋아라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게 행복이지 하는 “행복의 원형”을 재발견한다. 아이가 “좋은 것을 향한 감수성을 활짝 열어내는만큼” 나도 그런 경험을 하며 그 시절 누렸던  행복감을 소환한다.

그때 난 그림책을 읽어주며 종종 눈시울을 붉히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가 된 딸보다 더 신나라 하며 큰 소리에 무척 민감했던 그 아이를 놀라게 하는 주책스런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이제 그림책 읽기에 재미를 부치기 시작한 손주와도 함께 하고 있다. 단지 제목에 끌려 일년 전에 사놓았던 그림책을 요즘 들어 손주가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림책 속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문고리를 돌리는 흉내도 내며 방 속에 뭐가 있을지 알고 싶어 책장을 서둘러 넘기기도 하고 손가락을 다리 삼아 길을 따라 걷는 흉내도 내면서 그림책에 몰입하는 아이에게 그림을 읽어주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한다. 사실 그 질문들은 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안보이네. 조금 더 걸어가 볼까?” “우와, 길이 꼬불꼬불하네. 천천히 걸어갈까?” “낑낑. 에구 힘들어라.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가 보자. 저 위에 뭐가 있을까?” “똑똑 안에 누구 있어요?” “어! 벌써 밤이 됐네.” 아이는 “깜깜해” 하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토끼들이 먹는 당근을 나눠 먹듯이 자기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내 입에도 넣어 준다.

 

그림책은 순진무구한 그림과 함께 아주 깊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직면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읽는 사람 안에 담긴 감정의 정체를 드러내 준다. 독서치유라는 형태의 상담이 가능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담자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감정을 이입하거나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하며 억눌린 감정을 분출한다. 이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도우면서 치유 과정을 이어가는 것이 독서치료의 과정이다. ‘걸어 보아요’ ‘두드려 보아요.’ 아이와 함께 읽을 첫 그림책으로 고른 책 제목이다. 배달된 책의 책장을 넘기며  문득 그림책이 나를 읽어내는 경험을 했다. ‘이 제목들이 왜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얻었다. ‘걸어 보아요’의 그림들을 따라가며 나는 지쳐있는 내 자신을 만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쳐있는 우리를 만났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면 안된다는 다독임을 구했다. 문을 계속 두드리며 답을 찾는데 여전히 내가 찾는 것은 없는 상황. 길을 따라 걸으며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내게 더 걸어야 할 길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 아이는 또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코로나 베이비라고 불리는 이 어린 세대를 위해 그들 앞서 살아온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코로나로 휴간하게 된 이후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게 되면서 2022년 한 해는 그림책을 통해 마음을 읽고 도닥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 경험이었다. 서울에서 손주와 함께 그림책 읽는 시간을 통해 나는 내담자와 그리고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분들과 그림책이 전하는 다독임, 그리고 좋은 것에 눈 뜨게 될 때 얻는 행복감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이런 소망을 담아 ‘고래가 보고 싶거든’이라는 잘 알려진 그림책을 소개하면서 2022년 첫 걸음을 떼려 한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의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이 책을 본다면 그런 의미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림책은 이해하며 읽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아이는 그저 그림책 속으로 스며 들어가 동화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 뜨며 좋은 것을 향해 마음을 연다. 나도 최대한 그런 아이의 마음으로 이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고래가 보고 싶니?

창문이 있어야 해 그리고 바다도 있어야 해.

“저게 고래일까” 하고 생각할 시간도, 적당히 포근한 담요도 있어야 해.

너무 포근하면 잠 들 수 있으니.

그리고 한 눈 팔면 안돼. 꽃향기 가득한 장미에게도, 재미있어 보이는 펠리칸에게도.

고래가 정말 보고 싶니?

그러면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해.

 

처음 이 책을 읽으며 ‘내게 이런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 있을까?’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면 정말 고래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책 보다는 내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태도를 고쳐 아이처럼 책을 향해 감각을 열고 다시 보니 아이의 마음 속 간절함과 그의 곁에 늘 함께 하는 강아지가 보였다. 그리고 강아지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아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늘 함께 하는 강아지를 따라가며 그림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바다가 시리도록 파란 빛이아니라 에메랄드 빛으로 따뜻하게 채색되어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바다에 고래가 이미 도착해 있음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와 앉은 장면들을 품은 채 책장을 덮으며 나의 이야기를 덧 대어 썼다.

 

고래가 정말 보고싶니?

그러면 함께 기다려 줄 수 있는 강아지도 있어야 해.

한 눈 팔 때면 간절했던 나의 바램을 일깨워 주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을 실어줄,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해.

 

내 머리 속으로는 손주와 함께 나란히 앉아 고래를 기다리는 할머니 강아지를 그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아이가 아침이면 창문을 열어젖히고 고래가 있음직한 그곳을 바라 볼 수 있기를, 쪽 배를 타고서도 출렁이는 바다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발장구 치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어느 만큼의 거리를 두고 앉아 동행하는 모습을 그렸다. 사노라면 유사 고래에 유혹되어 거짓된 꿈을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미천한 경험을 통해 얻은 덜 익은 노하우를 근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심 때문에 곤경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동행하는 강아지가 되어 짖어대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성급하게 고래를 찾아 자신의 성공을 세상에 증명해 내려하지말고 오히려 불확실하거나 애매모호한 상황도 견뎌내며 고래를 기다릴 수 있는 소극적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삶의 지혜를 들려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나이에 무슨 간절한 바램이 있겠어’ 하며 고개 숙이던 내 자신에게도 이렇게 묻고 답했다.

 

고래가 보고싶니?

그렇다면 먼저 그 고래가 있은 바다를 향해 눈을 들어야 해

-GMK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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