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9개월도 안 돼 100조동(약 4억달러) 이상을 순매도하며 대규모 자본 유출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순매도액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VN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국내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운데 벌어진 '역설적' 현상이다.
24일 기준으로 외국인들의 전체 시장 순매도액은 100조동을 넘어섰다. 이 중 호찌민증권거래소(HOSE)가 92조5000억동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2024년 전체(93조동)를 이미 넘어섰다. 2024~2025년 2년간 누적 유출액은 193조동(약 74억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 규모다.
매도 압력은 대형주에 집중됐다. 빈그룹(VIC), FPT, 빈홈스(VHM), 비엣콤뱅크(VCB), 호아팟(HPG) 등이 주요 타깃으로, 빈그룹만 8월 초 이틀간 1조2600억동 규모 거래로 외국인 지분율이 급감했다. FPT, VHM, VCB도 수백억에서 수천억동의 순매도가 이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장 상황과 대조적이다. 2024년 VN지수는 1200~1300포인트대에서 횡보했으나, 올해는 1600포인트를 돌파하며 1700포인트에 근접했다. 거래액이 30억달러를 넘는 세션이 빈번하며, 은행·부동산·증권주가 급등해 VN지수를 신고점으로 이끌었다. 국내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동안 외국인 자본은 기록적 규모로 빠져나갔다.
월별 데이터도 집중도를 보여준다. 7월 약 8조5000억동 순매수로 반전했으나, 8월 43조동, 9월 24일까지 21조동의 대규모 매도가 이어졌다. 이는 연초부터 지속된 추세로, 국내 투자자 심리에 압박을 주고 외국 자본 흐름 전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환율·금리 압박과 글로벌 추세가 원인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통화 변동성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금리를 장기화하면서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이는 달러/동 환율에 압력을 가했다. 올해 8개월간 동화는 달러 대비 3.45% 평가절하돼 환산 비용 증가와 외국인 수익 침식을 초래했다. 많은 펀드에서 동화 자산 보유가 위험해지면서 포트폴리오 비중을 줄였다.
동시에 미국 시장이 기술주 중심으로 자본을 빨아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메타, 테슬라 주가가 급등하며 나스닥 지수를 신고점으로 밀어올렸다. 미국 주식 펀드가 수백억달러를 유치한 반면, 신흥·프론티어 시장에서 자본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FPT를 제외하면 베트남에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따라갈 만한 대형 기업이 부족해 외국인 투자처가 제한적이다.
밸류에이션도 투자자들의 신중함을 유발했다. VN지수가 급등한 8월 말 평균 P/E 비율이 15배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지역 시장을 약간 웃돌았다. 이 수준에서 많은 펀드가 이익 실현에 나서며 시장 조정을 기다리고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했다. 주가 상승이 이익 개선을 앞지르면 안전 마진이 좁아져 외국 자본이 조심스러워진다.
또한 베트남 시장은 수년간 대형 IPO가 부재했다. 2018년 이후 선도 기업 상장이 적어 신규 '상품' 공급이 제한됐다. 외국인 지분 한도도 많은 종목에서 포화 상태로, 비중 확대가 어렵다.
외국 자본 흐름 반전 기대
앞으로 외국 자본 반전 전망은 2024년과 2025년 상반기보다 유리한 요인과 연계된다. 9월 Fed의 첫 금리 인하가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힌다. 국제 금리가 '장기 고금리'에서 '신중한 완화'로 전환되면 달러/동 환율 압력이 완화되고, 베트남 자산 보유 위험이 줄어 외국인 복귀 여건이 조성된다.
밸류에이션도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강한 성장 후 P/E 비율이 3년 고점에 도달했으나, 4분기에는 9월 주가 조정과 3분기 기업 이익 개선으로 합리화될 전망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주요주들이 장기 투자 매력 구간으로 돌아와 외국 자본 유입 기회를 열 수 있다.
장기 동인으로는 시장 업그레이드다. 베트남은 KRX 시스템 도입, 사전 청산 요건 제거, 정보 공시 국제 기준 준수 등 거래 인프라 개혁을 이뤘다. 이는 FTSE 러셀이 베트남을 감시 목록에서 제외하고 신흥시장으로 업그레이드할 기반으로 평가된다. 업그레이드 시 글로벌 인덱스 펀드가 수십억달러를 의무 배분하며, 수동 자본뿐 아니라 능동 자본 유입과 대형 IPO 촉진을 자극할 수 있다.
국내 자본 안정성도 반전 기대를 뒷받침한다. 국내 투자자가 유동성 대부분을 차지해 시장 상승 추세를 유지하며, 외국인 복귀 시 과도한 변동 없이 트렌드를 따라갈 '쿠션' 역할을 한다.
금리 정책, 밸류에이션, 시장 업그레이드 요인이 공명하며 이전보다 유리한 그림을 형성한다. 이는 외국 자본이 즉시 강하게 반전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순매도 압력이 점차 줄고 새로운 순매수 사이클 여지가 뚜렷해지는 전환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증시의 구조적 매력이 여전하지만,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안정적 정책과 개혁이 외국인 신뢰 회복의 열쇠"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