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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일의 굿모닝메세지】국민과의 대화법

이정국 기자  2020.07.20 14: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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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약으로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이하 인국공)을 방문해서 임기중 비정 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우선적으로 공공부문이라도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약속한 모습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소방대원들, 공항검색요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활짝 웃는 모습과 함께 정일영 사장이 1만명 정도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은 각 매체에 큼지막하게 실렸다. 이때만 해도 모두 행복한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난 6월 인국공에서 그동안 외주화되었던 공항소방대원, 야생동물통제요원, 보안검색 요원 등 비정규직 2천여명을 외주회사 정규직이 아닌 인국공 정규직 (청원경찰 신분)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 나게 되었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비정규직은 우리사회의 불안정과 경제적 불평등을 가중시킨 요인으로 지적되어 올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가운데, 오랫동안 세계 최고공항으로 꼽히면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84%에 달한 인국공이 정규 직을 늘리겠다는 것은 충분히 ‘굿 뉴스’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달간 정치권과 사회에서 왜 많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을 까?

 

이와 관련된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 정규직 전환이 이미 2017년 예고되어 있었고, 전환되는 직군이 일반 취업준비생이 준비하는 분야와는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채용방식도 다르며, 정규 신입공채보다 임금수준도 낮을 뿐더러 자리를 빼앗아가는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취업준비생 등 비판하는 측에서는 외주 용역사 정규직도 아니고 최상 급의 공공부문에 해당하는 인국공에 아무 경쟁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취업하기 위해 밤낮없이 준비에 열중하는 취업준비 생들에 대한 역차별이며, 청년 일자리가 점차 줄고 청년 실업률까지 높은 마당에 ‘사다리 걷어차기’에 해당하는 특혜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 아무도 - 심지어 야당도 - 생각한 그림이 아닐 것이다. 정규직을 늘리겠다는 선한 약속에, 누구나 성별, 지역, 계층, 연령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여 다 함께 잘사는 나라인 포용국가 개념에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에서 2019년 혁신적 포용국가 원년을 선포하면서 제시한 조건이, ■ 사회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 ■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기본조건으로 제시하였다. 이 대전제에 정치적으로 비판하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용감하게’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과 정치과정을 비판적 으로 이해해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한편으로는 취업준비생들이 기회의 박탈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삶에서 이제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는 분들의 입장도 마냥 무시 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인국공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문제점은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찬반 양측이 치열한 논쟁을 해야할 많은 부분 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따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한달간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준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필요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오해를 낳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환으로 정규직을 전환하겠다는 대전제에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오히려 인국공과 정부의 설명대로 이 전환이 대다수 취업준비생과 무관하며, 비정규직의 경력도 전문성을 쌓아가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차근하게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면 어떠했을까? 정부와 정치권은 그렇게 하는 대신 구체적 설명없이 ‘오해’라거나, 오히려 취업 준비생을 타박하거나, 정치공세 정도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자들 중에는 사실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설명없이 여론을 떠보다가 반발에 부딪치면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하는 식의 대응적인(reactionary) 정책결정이 최근에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공기업이나 정부 관계자의 입장에서도 억울하지 않은가?


이런 모습들은 마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에서 각종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가운데 직면한 국민들의 반발을 연상케 한다. 당시 정부에서는 외환위기로 구조조정과 파산 등으로 실직한 국민들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노후 보장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설계 하면서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을 도시 자영업자와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결정을 하게되었다. 그런데 막상 확대 수혜대상자들로부터 소득신고를 받기 시작 하면서 정부를 향한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당시 주요 온라인 공간이던 천리안과 하이텔 등 PC통신 소통란에서는 성난 네티즌들의 정부비판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국민연금에 대한 홍보 및 정보가 불충분한 가운데 날아든 연금고지서는 마치 세금폭탄과도 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정부관계자들은 “당연히 안내전단을 나누어주고 홍보를 충분히 했다”라고 항변했지만, 전화 문의 대부분이 단순 내용 문의성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민연금제는 노령화 시대를 맞아 모든 국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선정(善政) 중의 선정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저항을 맞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결국 보건복지부를 강력하게 질타 하기도 했다.


교과서적인 제언이라 마음에 안들기는 하지만 다시 원칙적인 이야기를 강조하자면, 정부가 숨겨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있어서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비용을 최소화하고 정책순응(compliance)을 높이는 방법이다. 인국공 사태도 정치인들이 나서기 전에, 취업준비생들이 반응을 보이기 전에 충분히 반대의 입장에서 고려해보고 홍보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요즘은 이런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이해하고 칭찬할 만 하다. 예를 들면 저소득층 아동급식 지원은 그동안 지방정부에서 카드를 받아 식당 등지에서 써왔는데 일반 체크카드와 디자인도 다르고 다른 단말기를 쓰는 바람에 결식아동의 신원이 드러나게 되어 사용을 꺼리게 되는 낙인(stigma)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디자인도 바꾸고, 카드 단말기도 범용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런 원칙은 정부-시민 관계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부가 좀 더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납득할만한 설명을 한다면 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순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굿모닝메세지
Fulbright University Vietnam 정책대학원 교수 배유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USC) 정치학박사 | 전 싱가포르경영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한국의 이중적 지방 민주주의>, <Mega-Events and Mega Ambition> 등의 저서와 논문의 저자.